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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재생의 미래(상): 뛰어난 재능이 미래 바꾼다 -- 두뇌집단 소니CSL
  • 카테고리비즈니스/ 기타
  • 기사일자 2018.12.25
  • 신문사 일경산업신문
  • 게재면 1면
  • 작성자hjtic
  • 날짜2019-01-01 14:23:59
  • 조회수586

SONY 재생의 미래: 제3부 모난 돌을 찾아라(상)
뛰어난 재능이 미래를 바꾼다
두뇌집단 소니CSL, 소수정예 30명/ AI∙화장품 등 제한 없는 개발 테마


소니의 두뇌집단, 소니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소니CSL).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졌지만 비밀스러운 조직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불과 30명의 소수정예로 소니의 주력 비즈니스와는 동떨어진 독창적인 테마를 연구한다. 전기업계는 정리해고로 인해 기초연구기관을 많이 폐쇄해 왔다. 설립한지 30년이 되는 소니CSL. 상식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아 미지의 테크놀로지를 추구한다.

10월 23일, 도쿄 고탄다에 있는 소니CSL 본사. 설립 30년을 기념하여 연구자가 성과를 발표하는 ‘오픈하우스’를 열었다. 소니그룹을 불문하고 많은 견학자가 방문하여 장사진을 이뤘다. 행사장 안은 열기가 넘치고 있었다. 약 30명 연구자들의 독창적인 설명에 발길을 멈추고 집중해 듣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소니의 주력 사업과는 전혀 다른 테마들이다. 스마트농업, 로봇의족, 도시계획, 화장품 등 다양하다. ‘정보기하학과 기계학습의 신전개’ ‘공간을 장식하는 음악’. 테마 중에는 일반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프레젠테이션도 있었다. 이처럼 규율이 없는 카오스와 같은 연구체제야말로 소니CSL의 정수이며 설립 초기부터 이어져온 이념이다.

소니CSL은 우연한 계기로 탄생하였다. CSL의 전 사장으로 당시 게이오대학 교수였던 도코로(所) 씨에게 87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당시 컴퓨터부문 책임자였던 도이(土井) 씨의 지시를 받은 소니의 사원이었다.

워크스테이션의 책임자가 되어 달라며 필사적으로 설득하였지만 도코로 씨는 거절하였다. 대신에 자신의 생각하고 있었던 구상을 제안하였다.

도코로 씨는 “미국 제록스는 팔로알토연구소를, AT&T는 벨연구소를 갖고 있다. 일본에도 이들 연구소에 뒤지지 않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라고 제안하였다. 일본의 제조업에서도 본업과 관련된 연구기관은 있었다. 그러나 도코로 교수가 생각한 것은 실익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도 미래 사회를 바꾸는 테크놀로지를 창조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여유롭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을 품고 있던 도코로 교수는 하루 만에 드래프트 방안을 작성하여 도이 씨에게 보냈다. 당시 소니의 사장은 소니를 국제적인 기업으로 키운 고(故)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사장이었다. 경영자, 음악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했던 능력자.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소니CSL이 탄생하였다.

30년 동안 소니CSL에서 많은 프로덕트와 서비스가 탄생하였다. 로봇강아지 ‘AIBO’의 기본소프트(OS) ‘Aperios’도 그 중 하나다. 도이 씨가 직접 개발을 이끌며 초대 사장이 되었다. 3D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술언어 ‘VRML’ 등을 개발하였다. 반도체, 일렉트로닉스 제품의 제조 프로세스에 내장된 숨은 기술도 있다.

설립 6년째에 입사한 사람이 현 사장인 기타노(北野) 씨다. 인공지능(AI)의 제1인자다. AI 위협론이 제기되며 AI와 인간의 관계, 윤리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일본과 해외에서도 규칙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소니CSL은 독자적으로 ‘윤리규정’을 올 9월에 만들었다. 항상 세계의 흐름보다 한 발 앞서 걸어왔다.

순풍만범의 30년이었던 것은 아니다. 소니도 오랫동안 정리해고가 이어지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사이에 재편 위기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이미지처리기술 등의 ‘기하라연구소’, 생산전략을 교육하는 ‘나카무라연구소’는 폐쇄되었다. 라이벌 전기업체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잇달아 기초연구소를 폐쇄하였다.

소니CSL은 왜 살아남았을까? 획기적인 조직 운영이 그 배경에 있다. 우선 예산이다. 소니 매출의 만분의 1을 기본으로 한다. 설립 당초는 매출이 2조~3조엔이었기 때문에 2억~3억엔 정도, 최근에는 8조엔 정도이기 때문에 예산은 8억엔이다. 시작할 때가 연구자 3명, 지금도 30명으로 소수정예인 것도 그 때문이다.

발족할 때부터 연봉제를 채용하였다. 매년 성과 심사를 통해 다음해의 연봉, 계약 경신이 결정된다.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급여수준, 처우, 환경을 제공하는 대신에 연구자 개개인에게 절대적인 오리지널리티를 요구한다.

연구자가 되는 것도 바늘구멍이다. 이력서가 계속 들어오지만 통과하는 것은 수십 명 중에 한 명에 불과하다. 여러 번 도전 끝에 입사한 사람도 있다. 어렵게 입사했다 하더라도 대학∙대학원 시절의 연구의 연장이라면 인정받지 못한다. 그것은 지도교수의 실적이지 본인의 실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연구원이 “아는 사람이 있는데 CSL에 입사시켜 주실 수 없습니까?”라고 부탁했다. “좋아요.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보다 재미있으면 당신은 사라질 겁니다”. 연구 속도를 중시하고 실용화가 목표하면 연구 멤버는 많은 편이 좋다. 그러나 소니CSL이 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약 30명의 연구자는 동일한 테마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주성을 중시하고 있다. 라이벌 회사가 수용하지 않는 테마를 개발하는 만큼 그에 부합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외부나 소니 본사 입장에서도 상식을 파괴하는 전대미문의 연구가 약 3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소니의 요시다 사장 “성과 없어도 연구는 계속”

소니와 소니CSL과의 관계를 ‘스프가 식을 정도의 거리’라고 표현한다. 소니CSL이 입주해 있는 빌딩은 설립 당초부터 바뀌지 않았다. 옛 소니 본사에서는 걸어서 10분, 지금의 본사에서는 20분 정도의 거리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너무 가까우면 소니의 경영이 연구에 참견하게 된다. 반대로 너무 멀면 교류가 없어진다.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기업 내 연구소로서의 시너지를 낸다. 도코로 교수는 “앞으로도 본사와의 거리감에 계속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소니CSL의 기타노 사장은 “연구자에게 소니 사업에 공헌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말한다. 연구자는 연구에 몰두하고 소니와 협력할 기술이 있으면 협력한다. 모회사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파괴적인 것에 도전하는 의욕 있는 괴짜 연구자를 모아 마음껏 연구하도록 한다”. 소니의 홈페이지에서 소니CSL을 이렇게 소개한다.

‘모난 돌을 구한다!’ 소니는 1969년, 이런 구인 광고를 냈다. 상식에 구애 받지 않는 인재를 필요로 했다. ‘모난 돌’이 모여 활약하는 곳이 소니CSL이다.

요시다 사장은 개혁을 추진했던 10년을 되돌아본다. 성과로 쉽게 이어지는 개발에 치우쳐 있었다. “본인의 재임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술을 열심히 추구하는 것은 경영의 중요한 규범 중 하나다”라고 말한다. 소니CSL은 단기간에는 수익은 고사하고 성과가 나올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소니의 장기적 시점에서의 경영이 있기 때문에 소니CSL의 진중한 연구 자세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일본에서 처음, 세계에서 처음’인 상품을 탄생시키며 창업 이래 이어지고 있는 ‘SONY’의 DNA. 소니CSL이 신생 소니,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를 견인한다.

 -- (중)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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