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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경사이언스_2018/09_양자컴퓨터, 100 양자 비트를 목표로
  • 저자 : 日経BP社
  • 발행일 : 20180901
  • 페이지수/크기 : 116page/28cm

요약

Nikkei Science_2018.9 Front Runner (p9-11)

Front Runner
양자컴퓨터, 100 양자 비트를 목표로
초전도 큐비트의 창시자, 나카무라 야스노부 교수

▶ 나카무라 야스노부/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
1968년생 오사카 출생. 1990년 도쿄대학 졸업, 1992년 도쿄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공 학박사. NEC 기초연구소 연구원, 델프트 공대(Delft University) 객원 연구원 등을 거쳐 2005년 NEC 주임연구원. 2012년부터 현재까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에 재직, 2014년부터 이화학연구 팀 리더를 겸임. 1999년 니시나(仁科)기념상, 2014년 에자키 레오나(江崎玲於奈)상 수상.

세계 전역에서 다투어 개발하는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최초 소자를 만들어 낸 파이오니아는 100 큐비트의 고정밀도 제어를 목표로 내걸었다.

지금, 전세계에서 엄청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양자컴퓨터. 다양한 하드웨어 개발이 시도되고 있으나, 그 최전선에 있는 것이 구글 및 IBM, 인텔, 각국의 유럽 대학과 벤처기업이 맹렬하게 경쟁하고 있는 초전도체를 사용한 양자컴퓨터이다. 그 기본 소자인 초전도 큐비트(qubit 또는 양자 비트 quantum bit) 1개를 세계 최초로 세상에 선보인 것이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의 나카무라 교수이다.

1999년 4월, Nature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은 당시 NEC의 기초연구소 소속이었던 나카무라 씨가 보고한 1장의 그래프였다. 완만한 파형이 겹쳐진 그 그래프는 기판 위에 만들어 놓은 초전도체의 작은 상자가 쿠퍼쌍이라고 불리는 전자쌍이 N개 들어간 ‘0’의 상태와 N+1개 들어있는 ‘1’의 상태를 동시에 취하고 있는 ‘양자적 중첩’이 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중첩이란, 측정하면 ‘0’이나 ‘1’ 중 하나의 상태가 되며 각 상태의 실현 확률은 상자에 전압을 거는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것은 큐비트의 기본 동작으로서 나카무라 씨는 세계 최초로 개체 소자를 사용해 큐비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카무라 씨의 실험에 대해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매우 흥분했으며 자신들도 도전하고 싶어했다”라고 구글의 양자컴퓨터 개발팀을 이끌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타바버라캠퍼스(UCSB) 교수인 존 마르티니스 씨는 회상한다. “그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 미혹을 떨쳐내 --
이 세계는 양자역학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뉴턴의 고전역학적 세계로서, 양자의 중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중첩 상태는 매우 깨지기 쉬우며 주위의 환경과 상호 작용에 의해 곧바로 하나의 상태로 정해진다. 우리의 일상 세계는 중첩이 깨진 후에 생긴 유일한 상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의 컴퓨터는 그 상태를 이용해 계산하고 있다.

한편, 양자컴퓨터는 양자적인 중첩인 상태로 계산한다. 지금의 컴퓨터로는 할 수 없는 계산이 가능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실현의 열쇠가 되는 것은 큐비트를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환경에서 가장 차단하기 쉬운 큐비트는 광자이며, 그 뒤를 이어 전자기장 등으로 공기 중에 분리시킨 이온 및 원자이다. 독립성이 강할수록 중첩은 길게 유지되지만, 계산하기 위해서는 목표 큐비트들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모순된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실현은 상당히 어렵다.

실험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나, 처음에는 오로지 광자(光子) 및 공기 중의 이온이 사용되었다. 어차피 실용 머신을 목표로 한다면 광자와 이온이 아닌, 지금의 컴퓨터와 동일한 개체 소자 쪽이 편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고체 소자에는 그 안에 결핍 및 하전입자가 있어, 그런 곳에 큐비트를 만들어도 얽힘(entanglement)이 깨지고 만다. 따라서 실제로는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나카무라 씨의 실험은 업계의 그런 분위기를 한방에 뒤집어버렸다. 고체 소자의 큐비트가 동작하는 것을 목격한 마르티니스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은 초전도 큐비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체 형태의 큐비트 실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초전도 컴퓨터의 융성은 그 연장선에 있다.

-- 양자컴퓨터와 만나다 --
나카무라 씨가 도쿄대학에 입학한 1986년에는 세계에서 주목 받는 대발견이 있었다. 스위스의 IBM 취리히연구소의 연구자가 고온초전도를 발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반신반의했을 때, 가장 먼저 추가로 시험하여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 도쿄대학의 우치다(内田) 씨(현 도쿄대학 명예교수)였다. 공학부에 진학한 나카무라 씨는 우치다 교수 밑에서 고온초전도 연구를 시작했다.

고온 초전도 물질은 세라믹(도자기)이다. 원료 분말을 유발에서 골고루 섞어 만든 후 높은 온도에서 구워 시료를 만든다. 석사과정 때 제작한 단결정의 시료를 해외의 연구그룹의 실험에 제공하여 그 분야에서 유명한 논문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조금 다른 것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온 초전도는 상당히 복잡한 물질로,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상태였다. 일일이 확인해야 되는 실험이 많아, 물질 그 자체를 이해하게 된다는 실감은 별로 없었다.

1992년에 석사 과정을 마치자, 나카무라 씨는 NEC에 취직했다. 희망대로 연구소에 배치되어 고온에서가 아닌, 상온에서의 초전도체 연구에 집중했다. 초전도체는 각각의 전자나 원자가 아닌, 다수의 전자 집단이 양자적인 상태로 되어 있다. 이 전자 집단의 중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미국 일리노이 대학 교수인 레게트(Leggett) 씨가 이론적으로 제시했으나, 실험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1980년대에 인기였던 기업의 기초연구 붐이 아직 남아 있던 시대였다. 사업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연구라도 “그만두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다. 나카무라 씨는 필요한 기재를 여러 부서로부터 빌려와 실험을 시작했다.

수년 후에 중첩이 성립되어 있다는 증거를 얻게 되어 1997년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당시 히로시마대학에 있던 우에다(上田) 씨(현 도쿄대학 교수)로부터 중첩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말고, 각각의 상태의 실현 확률을 제어할 수 있다면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로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양자컴퓨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해, 나카무라 씨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고체 큐비트의 실험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의 일이다.

필자가 나카무라 씨를 처음 인터뷰를 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1년도이다. 이미 초전도 큐비트의 개발자로서 이름을 널리 날리고 있었으나, 나카무라 씨는 왠지 ‘큐비트’라는 단어를 별로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아 보였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당시에 큐비트가 중첩의 성질을 띠고 있던 시간은 단 1 나노 초에 불과했다. 매우 쓸모 있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실험이 나카무라 씨의 훗날의 연구 인생을 결정 짓게 했다. 2001년부터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대에서 1년간 유학하며 새로운 초전도 큐비트의 연구에 주력했다. 델프트 공대 교수인 모이(Mooij) 씨가 이론을 제창하고 있었던 전자쌍 수가 아닌, 초전도 회로에 흐르는 전류의 방향에 의해 중첩을 만든다는 아이디어이다. 오른 쪽으로 도는 ‘0’의 상태, 왼쪽으로 도는 ‘1’의 상태를 동시에 실현하여 각각의 실현 확률을 제어한다.

델프트 공대의 박사 연구원과 함께 실험을 진행했으나, 생각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었다. 시간만 흘러 귀국 날이 다가올수록 “속이 시커멓게 탔다”고 한다. 귀국까지 정확하게 1개월을 남겨놓고 있었을 때 드디어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초전도 큐비트로 인해 중첩의 유지시간이 수십 나노 초로 늘어났다. 귀국 후인 2003년에 논문을 발표하여 ‘초전도 큐비트의 나카무라’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처럼 되었다.

-- 보이지 않는 진보 --
초전도 큐비트가 처음부터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의 핵심으로 지목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공중으로 분리한 이온을 사용하는 ‘이온트랩 양자비트’ 쪽이 실험에서는 앞서 있어 대규모화 및 계산이 쉽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보고 있었다. 이온트랩 양자컴퓨터의 연구를 이끌어 온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교수인 와인랜드(Wineland) 씨는 2012년에 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초전도 큐비트의 동작 시간도 착실히 늘어 갔다. 2002년 프랑스 원자력청 사클레 연구소 그룹이 새로운 초전도 큐비트를 연구하여 1마이크로 초(秒)대로 올려놓았다. 그 이후 미국 엘 대학이 큐비트를 공진기에 넣어 중첩 상태를 유지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한자릿수를 더 올림으로써 그 이후부터 주류가 되었다. “소속되어 있는 우리들 눈에는 착실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나카무라 씨)라고 말하지만, 큐비트를 축적하여 동작시키는데 까지는 좀처럼 힘들었다. 나카무라 씨의 실험으로부터 10년 흘러도 2~3비트에서의 실험이 계속되어 외부로부터는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경기는 하락하여 기업의 기초연구의 붐은 끝이 나고 말았다. 2012년에 나카무라 씨는 도쿄대학으로 이직했으나, 과학연구에게 산업에 공헌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강하게 요구 받게 됨으로써 언제 완성될 지 모를 양자컴퓨터 연구에 대한 투자는 축소되었다.

그러나 2014년 4월, 2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과거 나카무라 씨의 실험에 감탄하던 미국 UCSB의 마르티니스 씨가 현격하게 고정밀도인 초전도 큐비트를 만들어 5비트의 회로를 작동시킨 것이다. 큐비트를 집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양자컴퓨터 연구는 순식간에 과열되었다.

구글은 곧장 마르티니스 씨 그룹을 통째로 인수하여 양자컴퓨터 개발의 핵심 자리에 앉혔다. IBM은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20비트의 기계를 제공하고 있다. 델프트 공대는 인텔 및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세계 최대의 연구소 건설에 착수했다.

일본정부도 다시 양자컴퓨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광∙양자 비약 플래그십 프로그램 (Q-LEAP)’을 시작해 양자컴퓨터를 포함한 3개분야의 연구를 중점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나카무라 씨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한 질문에, 동작 에러율을 현재의 탑 데이터의 5분의 1로 줄인 ‘고정밀도 큐비트를 100개 집적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미 IBM이 50비트, 구글이 72비트의 양자컴퓨터 칩을 만들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너무 소심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들은 칩을 만들었다라는 발표에 불과하며 동작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양자컴퓨터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는 가운데 기업과 연구기관도 발표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세계가 양자컴퓨터에 과열되어 있다고 해도, 나카무라 씨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20년 전의 첫 발표 때부터 과한 선전은 일체 하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말한다. 때로는 주위에서 질시를 받을 때도 있으나. 같은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고정밀도 큐비트를 100개 집적하게 될 경우, 양자컴퓨터로 무엇이 가능한지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비트는 필요하다고 한다. 목표까지는 아직 멀었기에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나카무라 씨가 내디딘 첫발은 인류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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