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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의 미래, 차세대를 이끌다 (5) : 정체된 민주화를 뛰어넘다
  • Category비즈니스/ 기타
  • 기사일자 2017.1.19
  • 신문사 일본경제신문
  • 게재면 1면
  • Writerhjtic
  • Date2017-01-25 17:26:22
  • Pageview414

아시아인의 미래, 차세대를 이끌다 (5)
정체된 민주화를 뛰어넘다
「수치 칠드런」은 전직 래퍼, 미얀마 국회의원 제야 토

미얀마 수도 네피드에 위치한 전(前) 군사정권이 세운 국회의사당은 궁궐과도 같은 호화로움을 갖고 있다. 민주화 진전으로 당선의원의 멤버는 의사나 변호사, 경영자 등 다양화되었지만, 전직 래퍼 가수 제야 토(35)씨 보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는 2015년의 총선거 때, 수도의 선거구에서 출마했다. 2006년에 새로운 수도가 된 이 인공 도시의 주민들은 주로 군인이나 공무원. 이전 군사정권 정당의 기반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그는 전 공군사령관이던 정치 간부를 누르고 당선된다. 이것은 아웅산 수치(71)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의 정권 쟁취라는 전환점의 상징이 되었다.

「변화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컸다」라고 하는 제야 토 씨. 정부의 국제연맹 관련 요직에 임명되어, 장래의 리더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98년, 미얀마에서 한창 록(Rock)이 유행하던 이 시기에 17세 제야 토 는 당시 흔치 않던 힙합그룹을 결성한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꿈이나 희망을 가사화한 것뿐이었다」. 그러나「사람들은 나를 위해, 나는 사람들을 위해」라는 그의 데뷔 앨범은, 군사정권의 폐쇄적 사회 분위기에 지쳐있던 동세대의 공감대를 형성, 인기 순위 1위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반체제적이라는 이유로 군사 정권으로부터 발매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2007년의 그는「확신범」이었다. 이 시기, 승려 중심의 반정부 데모를 군이 무력으로 진압, 취재 중이던 일본인 카메라맨 나가이(長井)씨도 사살당했다. 분노한 제야 토는「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지하 조직을 결성해, 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 CD를 밀거래로 유통시켰다. 「CNG」(압축 천연가스)라고 인쇄된 삐라에는「Change Now Government」(지금이야말로 정권 교대)의 뜻이 담겨있었다. 2008년 그는 체포, 투옥된다.

금고 6년 형의 복역 중에 그는 하늘의 개시처럼 수치의 연설이 생각났다.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으면 스스로 일어서라」. 군사 정권의 자택 연금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었을 당시, 집회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2011년의 민정이관 이후 사면된 그는 NLD에 가입한다. 2012년의 국회 보선에서 당선, 당의 중앙위원으로 뽑히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1986년의 필리핀을 시작으로 타이완, 한국, 타이 등이 연이어 민주화 물결에 휩싸였다. 미얀마도 1988년, 수치의 지휘로 대규모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군의 진압으로 수 천명이 목숨을 잃고 좌절했다.

민주 운동을 주도한「88세대」는 정치범으로 감옥에 있었기에, 차세대의 민주화 육성은 침체되었다. 「선배로부터 배울 기회가 없었다. 차이를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제야 토. 수치 자신도 소수파인 이슬람교도의 인권 문제 등으로 비판 받고 있다. NLD의 2인자인, 우 윈 테인(75)은「민주화 정착까지는 10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타이에서 군사 정권이 부활하고, 필리핀에서 대통령이 강권 통치를 하는 등, 아시아 일부에서는 이전으로의 회귀도 보인다. 아시아가 민주화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30년. 젊은 세대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가치를 어떻게 재확인해 나갈 것 인가. 아시아의 정치 체제는 지금,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아시아인의 미래 키워드
민주화 운동

-- 필리핀 혁명의 파급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시대 아래, 아시아도 동서 진영으로 나눠졌다. 중국이나 구(舊) 소련에 가까운 나라들은 공산화가 된 반면, 친미 국가 중에서도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여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한「개발 독재」 체제를 취한 나라도 많았다.

이러한 아시아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 닥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6년, 마르코스(Marcos) 장기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필리핀의「피플 파워 혁명」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은 도미노처럼 주변 국가에 파급되었다.

대만은 1986년에 정당 결성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허용되었다. 한국은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여 언론의 자유도 확립되었다. 타이도 1988년, 군 출신의 수상에서 민선 수상으로 권력이 이양되었다.

민주화 바람은 미얀마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8년 8월,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군사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지도자 아웅산 수치 씨는 다음 해에 자택 연금된다. 중국에서도 학생이나 지식인이 민주화를 위해 일어났으나 그들의 요구는 좌절되었다.

명암이 나눠진 아시아의 민주화지만, 이미 선행된 나라에서도 최근 민주화의 정체가 눈에 띈다. 태국은 21세기에 들어 2번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현재도 군사 정권 하에 있다. 마르코스 체제 붕괴 후, 치안이 악화된 필리핀은, 강권 통치의 두테르테 정권의 탄생과 함께, 고(故)마르코스의 명예 회복이 추진되고 있다. 다소 늦은, 1998에 민주화가 된 인도네시아에서는 일부 국민으로부터 오랜 기간 독재 정책을 펼쳐 온 수하르토 전 대통령 시대의「체제 안정」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아시아 민주화의 흐름

1986년

 ○필리핀, ○대만

1987년

 ○한국

1988년

○태국, X미얀마 (탄압)

1989년

 X중국 (탄압)

1998년

 ○인도네시아

2011년

 ○미얀마

(注: ○성공, X실패)

  -- (6)으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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