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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의 미래, 차세대를 이끌다 (2) -- 관용과 융화, 영웅에 공감(共感)
  • Category미래기술,전망/첨단산업
  • 기사일자 2017.1.15
  • 신문사 일본경제신문
  • 게재면 1면
  • Writerhjtic
  • Date2017-01-20 15:13:53
  • Pageview700

아시아인의 미래, 차세대를 이끌다 (2)
관용과 융화, 영웅에 공감(共感)

-- 최정상 레이스 출전, 목표는 슈마허, F1드라이버 리오 하리안토 --
자카르타 교외의 서키트장에서 5시간 동안 레이싱카트로 70바퀴를 질주했다. 「내년 시즌을 위한 연습입니다」. 연말의 일정을 조정하며, 연습에 여념이 없다.

2016년, 리오 하리안토(Rio Haryanto)(23)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F1드라이버로서 영국 매너 레이싱(Manor racing)팀 소속으로 출전했다.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 회사인 퍼타미나(Pertamina)가 후원한다. 「엄마가 항상 함께하는 레이서」. 유럽의 언론은 연약한 아시아인이 정부의 자금으로 시트를 차지했다고 비웃었으나, 그는 12경주 출전 중 9경주를 완주해, 높은 잠재력을 보였다.

새로운 영웅의 출현으로 인도네시아는 들끓었다. 잘생기고, 지진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에게 문구를 선물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트위터 팔로우는 10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1993년 자바섬 중부 솔로(Solo)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문구회사를 운영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6세 때 카트에 처음 타보게 된다. 「슈마허가 나의 영웅이었다」. 아시아 및 유럽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금의 최정상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화려한 경력 뒤에는 유소년기의 가혹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1998년 5월, 5세였던 그는 자택 주변이 불바다가 되는 것을 목격한다. 당시, 수하르토의 장기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 유복한 화교들에게로 향해져, 전국 각지에서 습격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라」라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오금이 저렸다. 전국의 희생자수는 천명을 넘었다.

반공산주의인 수하르토 정권 아래, 소수파지만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았던 화교는「프리부미(원주민)」라고 불리는 다수파 자와인으로부터 증오의 대상이었다. 리오는 아버지가 화교였다. 「건방지게 행동해선 안 된다」. 어머니 베네와티씨는 아들에게 올바른 처세술을 가르쳤다.

그로부터 19년. 수하르토 정권 붕괴 후, 화교 차별 법률은 철폐된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추진되면서 노골적이던 화교에 대한 편견은 자취를 감추었다. 2014년에는 푸르나마(일명 아혹)씨가 화교로는 최초로 자카르타 주지사에 취임되었다.

그러나 작년, 아혹 주지사의 이슬람교 성전에 관한 실언으로, 화교 상점으로의 투석이나 약탈이 다시 발생하게 된다. 위도도 대통령은 국시(國是)인「다양성 통일」을 호소했지만, 증오는 쉽게 사그러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연령이 28세인 인도네시아는 이미 국민의 5명 중 2명이「수하르토 이후」의 세대이다. 「피부색이나 출신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리오를 향해 동세대 프리부미도「그가 화교인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자카르타 거주 회사원)라며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신들의 대변인」으로서, 세계로 도약하는 이 영웅에게 젊은 세대는 공감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과거의 불화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신흥국 대표주자로 주요 20개국 ㆍ지역(G20)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떨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모습이 투영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고립주의가 강화된다면, 싹트기 시작한 관용이 다시금 증오로 물들여질 위험성도 잠재되어 있다. 아시아 최대의 다민족국가의 국내 융화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아시아인의 미래 키워드
자카르타 폭동

▶예전 인도네시아에서는 화교의 권리가 제한되어 있었다.
о 인도네시아식 이름으로의 강제적 변경
о 한자의 사용 금지 및 화교계 학교의 폐쇄
о 국립대학 입학이나 공무원 취직을 사실상 제한
(1998년 이후 순차적으로 폐지)

-- 「경제를 지배하는」화교가 표적 --
인도네시아에서는 1998년, 30년 간 계속되어 온 수하르토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동으로 발전했다. 자마르타에서 지방으로 번진 난동의 표적은「정권과 유착해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라고 여겨지던 화교들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화교 인구는 약 800만명. 총 인구수의 30% 전후인 소수파였지만, 중국을 제외한 세계 최대 화교 거주국(居住國)이다. 1945년 국가 독립 후, 정권은 화교를 정치분야에서는 배척하는 반면, 경제분야에서는 결탁ㆍ이용해 왔다.

폭동의 계기는, 5월 12일, 자카르타의 트리삭티대학에서 반정부집회를 개최한 학생들에게 치안부대가 발포, 4명이 사망한 일이다. 정권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화살은「인구의 30%이지만, 부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화교에게로 향했다.

최대 재벌이던 살림그룹(Salim Group)의 살림 총재(당시)의 저택에 불을 지르는 등, 화교의 상점이나 가옥으로의 투석ㆍ방화가 연이어 계속되었다. 전국에서 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희생자수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도 원인이었다. 그 전년도인 1997년, 타이를 중심으로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해, 신용불안의 영향이 인도네시아통화인 루피아(Rp)도 급락시켰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과 더불어, 보조금 철폐 등, 대폭적인 구조개혁에 착수, 급격한 물가 상승이 국민 생활을 압박했다.

폭동을 계기로 수하르토정권은 붕괴했다. 반공산주의였던 수하르토정권이 중국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문화ㆍ교육 등에 제정한 화교차별 법률은 폐지되었다. 정치적 권리도 보장되어, 화교 정당도 창설되는 등 제도상의 지위는 향상되었다.

   -- (3)으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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