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이노베이션 (3): 초진화론, 자신의 수명 스스로 결정 -- 게놈편집에
-
- 카테고리바이오/ 농생명/ 의료·헬스케어
- 기사일자 2017.10.16
- 신문사 일본경제신문
- 게재면 11면
- 작성자hjtic
- 날짜2019-10-24 19:50:24
- 조회수330
단절(Disruption)을 넘어서; 의료 이노베이션 (3)
초진화론, 자신의 수명 스스로 결정
게놈편집에 달려 있는 ‘종(種)의 존망’
영국의 위대한 천재 다윈은 1859년에 쓴 ‘종(種)의 기원’에서 ‘지구 상에 이처럼 많은 생물이 있는 것은 생존 경쟁이 많은 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긴 시간 동안 유전자는 여러 번 변화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종이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진화’라는 개념은 당시, 모든 생물은 신이 만들었다는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60년. 인류는 다시 시대의 대변혁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편집하는 ‘게놈편집’ 기술이 진화의 앞날을 결정하는 시대. 질병 및 노화를 극복하고 싶다는 인류의 꿈이 실현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더 이상 다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물의학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솔크 연구소의 벨몬테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생명이 지구 상에 탄생한지 약 40억년. ‘Where Cures Begin(치료의 출발점)’을 내걸고 있는 이곳 연구소에서는 ‘다윈의 진화론’과는 다른 ‘진화’에 도전하고 있었다.
■ 만병의 근원인 노화에 맞선다
벨몬테 교수는 게놈편집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유수의 연구자이다. “노화는 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노화를 늦출 수 있게 된다면 병의 발병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뇌와 심장, 간 등 모든 기관의 질병은 45~50세 즈음에 급증한다. 벨몬테 교수는 생명의 설계도라고 하는 유전자를 새롭게 교체,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방법도 도입해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노화에 맞서고 있다.
유전자는 우연인지, 필연이지는 모르지만 긴 시간 동안 변화를 반복해왔다. 유전 정보는 생명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관점을 바꿔 생각하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전략이 담겨있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그 내용에 손을 댄다면 유전자가 이끄는 진화의 방향과 그 미래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올 여름, 벨몬테 교수는 논문을 통해 ‘조로증’을 앓고 있는 쥐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꾼 실험을 보고했다. 조로증은 유전자 이상으로 노화를 촉진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병이다. 게놈편집의 새로운 방법을 통해 유전자 배열을 정리한 결과, 수명이 45%나 늘어났다. 사람으로 말하면 약 10년의 연명에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교수는 유전자 기능을 좌우하는 ‘에피게놈(Epigenome)’을 통해 노화의 진행을 늦추려는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이 실험은 현재, 기초연구가 중심이며 쥐를 대상으로 한다. 부작용 등도 조사해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게놈편집을 에이즈 등의 치료에 활용하려는 프로젝트가 다수 진행되고 있다. “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벨몬테 교수).
게놈편집은 병균 중 한 종이 외부의 바이러스를 격퇴하기 위해 유전자의 본체인 DNA를 잘게 자르는 시스템을 모방한 것이다. 통찰력이 뛰어난 연구자가 이 시스템을 원하는 장소에서 유전자를 절단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기술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냈다. 2012년에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이라는 간단한 게놈편집 방법이 등장하자, 많은 연구자들은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기능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보충해 치료가 어려웠던 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흥분했다.
유전자의 기능은 복잡해 한정된 유전자 편집만으로 모든 질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라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유전자를 이 정도로 높은 정밀도로 조작하는 것은 처음이다. 언젠가 인류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다시 만들고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물 실험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치료 효과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우리들은 디스럽션(창조적 파괴)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도쿄의과대학의 네기시(根岸) 교수는 히로시마대학의 야마모토(山本) 교수팀과 공동으로 전신의 근육이 약화되는 난치병 ‘근디스트로피(Muscular Dystrophy)’ 치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근디스트로피는 유전자 이상으로 근육의 기능에 필요한 단백질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병이다. 발병한 쥐에 게놈편집을 시도해본 결과, “정상적인 단백질량이 10%까지 회복되었다. 여러 번 반복해 30%에 달하도록 한다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네기시 교수). 증상을 개선하는 대증요법(Symptomatic Therapy) 등 치료법이 있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게놈편집은 유전자 자체를 치료할 수 있어 1번의 치료로 일생 동안 효과가 지속될 것이다”라고 네기시 교수는 말한다. 연구팀은 5년 안에 개 등의 큰 동물을 대상으로도 실험해 기술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 불로불사를 위해 게놈을 타깃으로
“게놈편집이 일어나면 빨갛게 빛이 납니다”.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장기 조각에서 군데군데 빛이 났다. 도쿄대학의 우치다(內田) 특임조교가 소속되어 있는 연구실에서는 뇌와 간, 폐 등 몸 안의 특정 장기에서 게놈편집이 일어나도록 하는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변형성 관절염이나 알츠하이머병, B형간염 등에 대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우치다 특임조교는 말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건강하고 장수하고 싶다라는 근원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불사의 약을 찾아 신하를 먼 곳에 파견한 일화는 유명하다. 고대 이집트 등에서 만들어진 피라미드도 불로불사의 염원을 나타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인류의 진화 등을 연구하는 국립유전학연구소의 사토(斎藤) 교수는 “질병 및 노화의 원인이 되는 게놈의 변화를 게놈편집으로 제어한다면 금세기 안에 ‘불로불사’가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일본인 3명 중 1명의 사망 원인인 암은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주원인이다. 게놈을 정상으로 편집한다면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로불사는 오래 전부터 SF소설의 테마였지만 게놈편집 등을 이용한다면 살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사토 교수).
죽음이 멀어지는 미래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나갈까? 사토 교수는 “생과 사를 모든 사람이 선택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게놈편집을 통한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질병이나 노화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자신의 인생을 어떤 형태로 마칠 수 있을지, 게놈편집이 의료를 재정의하며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래로 인류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 게놈편집에 달려 있는 ‘종(種)의 존망’ --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보에 당혹감과 불안, 비판은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항상 있는 것’이라고 정리해 버리는 것은 게놈편집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종의 존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립연구개발법인 수산연구∙교육기구와 미에(三重)대학은 비와(琵琶)호수 등에서 번식하고 있는 북아메리카 원산지의 외래어 ‘블루길(Bluegill)’을 줄인다는 계획에 게놈편집기술 활용을 모색하고 있다. 수컷의 유전자에 게놈편집을 시행. 정상적인 알을 만드는데 필요한 유전자 등을 없앤 수컷들을 방류, 수컷들이 수정을 반복해 알을 낳지 못하는 암컷들이 늘어나도록 한다. 이러한 수컷을 일정 비율로 매년 지속적으로 방출한다면 수 십 년 안에 비와호수에서 멸종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수산연구∙〮교육기구의 오카모토(岡本) 게놈육종(育種)그룹장은 “우선 수 년에 걸쳐 수조 등의 실험을 통해 영향을 검증한다”라고 말한다. ‘만약 블루길 수컷이 ‘남성’이라면?’ 이라고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해진다.
게놈편집 작용이 환자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치료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자나 난자 등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다음 세대에 게놈편집이 시행된 유전자가 전해져 후세에 예상 밖의 영향이 미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흑인에게 많은 겸상적혈구병(Sickle-cell Anemia)은 빈혈이나 혈액순환 장애를 앓는 반면, 이 병 특유의 적혈구를 가진 사람은 말라리아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말라리아가 많은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생존하기에 유리하다. 사람에게 겸상적혈구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제거해버린다고 해도 말라리아의 위협에 노출되어 버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018년에는 중국의 연구자가 에이즈바이러스(HIV)에 잘 걸리지 않도록 게놈편집을 한 수정란에서 쌍둥이를 탄생시켰다고 보고해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게놈편집은 아직 미숙한 기술이기 때문에 다른 유전자를 의도치 않게 손상시킬 위험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 변이가 전해질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부모가 원하는 용모와 체질, 능력을 갖춘 ‘디자인 베이비’의 탄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히로시마대학의 야마모토 교수는 “현대 연구자들의 판단만으로 섣불리 어떤 종의 질병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은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 향후, 인류가 새로운 질병에 직면했을 때 인류의 생존이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다”라며 경종을 울린다. 진화의 원동력이 자연적 프로세스가 아닌 게놈편집에서는 ‘누군가’의 ‘의지’가 그것에 작용하게 된다. 눈 앞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진화를 조작할 수 있을 만큼의 지혜를 인류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