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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생리학∙의학상, 혼조 타스쿠 씨 -- ‘항암제의 아마추어’ 오노약품의 집념
  • 카테고리바이오/ 농생명/ 의료·헬스케어
  • 기사일자 2018.10.2
  • 신문사 일경산업신문
  • 게재면 1면
  • 작성자hjtic
  • 날짜2018-10-11 09:07:12
  • 조회수704

NEWS FOCUS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 혼조 타스쿠 씨
항암제의 아마추어’ 오노약품의 집념

교토대학 혼조 특별교수가 1일,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오노(小野)약품공업은 혼조 특별교수 연구 팀의 성과를 기반으로 암 면역약 ‘옵디보’를 만들었다. ‘혁신 약’으로 불리는 옵디보가 탄생한 배후에는 혼조 씨와 함께 항암제에서는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었던 오노약품이 고군분투하며 호흡을 맞춰 온 긴 역사가 있다.

옵디보는 암 치료의 현장을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옵디보는 에자이(Eisai)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약인 ‘아리셉트’ 및 산쿄(三共, 현재 다이니치 산쿄)의 고지혈증 치료제인 ‘메바로친’ 등에 이어, 수십 년 만에 일본에서 탄생한 획기적인 신약이다. 그러나 실용화로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혼조 특별교수의 연구 팀이 면역 억제 단백질인 'PD-1’을 발견한 것은 1992년. 당시에는 세포자살(아포토시스)에 관련된 분자로서 평가 받았으나, 명확한 구조를 알게 된 것은 1999년. 분자의 발견에서 그 해명까지 대략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렇지만 표적의 구조가 판명되자 그 다음은 분자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일만 남았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연구부터 제품화에 필요한 임상실험까지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노약품의 강점은 화학합성 기술이지만 PD-A는 ‘저분자’ 라고 불리는 기존 타입의 기술로는 세포의 활동을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당사가 돌파구로 생각해 낸 것은 ‘항체 의약’이라는 바이오 의약품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오노약품에는 항체의약품에 관한 어떠한 기술 축적도 없었으며 특허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미 개발 노하우를 보유한 대형 제약회사에 공동연구를 제안했으나, “면역 치료 따위는 무리다” “오노약품은 제정신인가?”라는 말을 들으며 국내외의 대부분의 제약 기업에게 거절당하기 일수였다.

당시의 암 치료에 대한 ‘상식’은 우선 수술로 암세포를 도려내고 방사선을 쬐게 하며 마지막에는 ‘극물’이 주성분인 항암제로 연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면역으로 암을 낫게 하는 방법은 암 전문가로부터 ‘사실상, 불가능’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이나 면역 세포의 배양 등 다양한 면역요법은 있었지만, “면역 요법은 효과가 미비하다”라고 의사 및 제약회사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의료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게다가 오노약품은 암 치료제의 개발 노하우가 없는 ‘아마추어 기업’이었기 때문에 오노약품과 손을 잡으려는 파트너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혼조 특별교수로부터는 “왜 임상실험에 진척이 없는가?”라는 강한 질책도 받았다고 한다. 그 시점부터 긴 사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05년까지는 암 치료제 개발에 대해 50%는 성공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1990년경에 혼조 교수의 연구실에 파견을 나가 2000년경부터는 기업측 개발부대를 진두지휘 해 온 오노약품의 시바야먀(柴山) 면역연구센터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렇지만 혼조 교수가 발견하고 해명한 분자를 어떻게든 실용화하고 싶다고 생각한 오노약품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개발 기업을 물색하기 위해 미국까지 건너가 수 년간 노력한 결과,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바이오 스타트업인 메다렉스(Medarex) (현재의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BMS)가 공동개발에 응한 것이다.

옵디보, 암 치료에 혁명을
노벨상에 혼조 특별교수

메다렉스는 오노약품과 같은 ‘CTLA-4’(현재 야보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서, 항체의약기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오노약품이 염원하던 임상실험은 2006년에 시작되었다. 당사와 오노약품의 만남이 암 치료에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반적인 항암제는 암 증식을 억제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 년간의 사용으로 내성이 생겨 결국에는 연명 치료밖에 방법이 없게 된다. 그러나 옵디보의 경우, 치료받은 말기 환자의 암세포가 축소했을 뿐만 아니라, 몇 년이나 그 효과가 지속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옵디보와 야보이를 함께 환자에게 투여한 임상실험 결과가 2013년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지(誌)가 뽑은 과학 10대 뉴스의 ‘올해 최고의 과학기술’에 선정되었다. 이것이 면역의 치료 효과를 전세계에 알리는 최대의 전환기가 되었다. 2014년 7월에는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면역력으로 암을 치료하는 ‘옵디보’가 승인을 받게 됨으로써 순식간에 전세계로 확산되어 암 치료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PD-1의 발견에서 임상실험까지 15년, 실용화까지는 대략 22년이 걸렸다. 신약 개발의 성공확률은 3만분의 1로, 하나의 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약 2천억엔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제약회사는 표적의 발견에서 신약 개발까지 긴 시간과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끊임없이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옵디보의 성공은 혼조 특별교수의 연구를 끝까지 믿고 막대한 개발비를 들이면서 끝까지 호흡을 맞춰 온 오노약품의 승리였다고 볼 수 있다.

-- 오노약, 교토대학과의 인연이 이노베이션의 토대로 --
오노약품과 교토대학과의 공동연구의 역사는 길며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노약품이 세계 최초로 의약품화에 성공한 체내물질 ‘프로스타글란딘’이 그 시작이다. 프로스타그란딘은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내리는 등 다양한 생리작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화합물로 합성에 성공한 기업은 간사이(關西)의 중견제약에 불가했던 오노약품 뿐이었다. 1974년에 진통제로서 일찍이 실용화될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12월에 고인이 된 하야이시(早石) 교토대학 명예교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은 혼조 특별교수도 하야이시 씨의 연구실에서 공부한 문하생 중 하나였다. 간사이의 중견제약 회사가 프로스타글란딘, 옵디보라는 2개의 세계적인 히트 약품을 만들어 낸 배경에는 모두 교토대학의 지원이 있었다.

간사이에 거점을 둔 기업과 ‘학술의 장’의 긴밀한 공동연구의 긴 역사. 이것이야말로 이노베이션을 창출하는 토대가 된 것이 틀림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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