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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의 미래, 차세대를 이끌다 (4) -- 금기를 직시, 2번의 아카데미상
  • 카테고리미래기술,전망/첨단산업
  • 기사일자 2017.1.17
  • 신문사 일본경제신문
  • 게재면 1면
  • 작성자hjtic
  • 날짜2017-01-23 13:51:02
  • 조회수1129

아시아인의 미래, 차세대를 이끌다 (4)
금기를 직시, 2번의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감독 샤민 오베이드 치노이

-- 문명 충돌, 내부에서 고발하다 --
파키스탄 동부. 구타 당한 19세 소녀의 머리에 총이 겨누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집을 나온 그녀를 아버지와 삼촌은 잡아다가 총을 쏘고 자루에 담아, 강가에 버렸다.

부모의 동의 없는 결혼이나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은 것을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행위로 여기고 딸을 살해한 아버지들이 영웅으로 칭송 받는다. 이러한 명예 살인은, 남아시아 및 중동 일부의 이슬람 교도 등에 아직도 남아있는 인습이다.

겨우 목숨을 건진 이 소녀를 그린 것이, 샤민 오베이드 치노이(38)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강가의 소녀」이다.

2015년 개봉된 이 38분짜리 작품은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켜, 의회는 명예 살인을 금고 25년 형으로 정하게 된다.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은 치노이 씨는「온 나라가 희생자를 추모했다」라며 기뻐했다.

원리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남자들의 폭동, 자녀를 세뇌시켜 자폭 테러범으로 키우는 무장 세력 등, 이슬람 사회에 숨겨져 있는 과격 사상의 단면을 취재해 왔다.

발단은 그녀가 10대 때 목격한 현실이었다. 명문 학교로의 통학 차량 안에서, 최대 도시 카라치 골목 한 구석에 같은 세대의 아이들이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불평등하다」라는 그녀의 말에 어머니는「의문이 든다면 글로 써라」라고 말씀하신다.

기자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 중이던 그녀는 2001년 미국 9.11 테러를 경험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거부한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해 폭격을 시작했다.

당시, 주위에 아프칸인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다. 영상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녀는, 펜 대신 카메라를 잡았다. 「공습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의 첫 작품은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녀가 조국 파키스탄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이다. 이웃나라 아프칸의 탈레반을 지지해온 정부가 친미로 방향을 전환하자, 반대파는 과격화되었고 국민 통합이 위태로워졌다. 치노이 씨는 이러한 유럽ㆍ미국과 이슬람의 「문명의 충돌」의 최전선을 취재했다. 「조국의 치부를 드러내지 말라」는 비판도 받았지만,「이 두 세계를 왕래하는 자신만이 찍을 수 있다」며 동요하지 않았다.

1978년 생인 치노이 씨는, 전 해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 이후의 엄격한 이슬람주의가 고양하는 속에서 자랐다. 「옛날엔 멋을 부리거나 음악을 즐기는 자유가 있었다」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조부나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조국도 예전엔 온건한 세속 사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 개봉된「송 오브 라호르(Song of Lahore)」는 엄격주의의 대두로 연주 기회를 잃은 음악가들이 전통악기를 가지고 전혀 다른 장르의 재즈를 연주한다. 이것이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되며, 그들은 미국에서의 공연에 초대된다.

「파키스탄인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아티스트다」라고 지휘자인 니자트 아리(36) 씨는 말한다. 치노이 씨는「젊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좀 더 이해시키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예측에 따르면, 2030년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는 약 2억 6천명으로 증가해, 인도네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다 보유국이 된다고 한다. 이슬람교도의 60%가 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는 통계도 있다. 글로벌화의 역풍으로 날카로워진 민족ㆍ종교의 대립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 인가. 이(異)문화와의 공존은 서로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시아인의 미래 키워드
이슬람 과격파

-- 배타적 사상의 선전 통해 확대 –
교조(敎條)적인 이슬람 사상을 확대해나가기 위해, 테러나 폭력, 유괴 등의 범죄 행위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이슬람 과격파 세력. 중동을 중심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세속화된 사회를 적시하고, 서양에서의 무차별적인 테러도 증가되고 있다.

이슬람 과격파의 등장은 1979년 구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군사 침략이 큰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이슬람주의가 부흥하게 된 시기이기도 해, 침공에 저항한 아랍 국가들의 의용병이 계속해서 아프칸으로 모여들면서「알카이다」의 모체가 형성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훈련에 참가한 의용병이 자국으로 귀환하면서, 과격 사상은 세계 각국에 퍼지게 되었다.

2001년의 미국 9.11 테러를 일으켰다고 전해지는 알카에다 외에도, 아프칸의「탈레반」, 나이지리아의「보코 하람」 등이 점차 세력을 넓혀나갔다.

2010년, 중동의 민주화 운동「아랍의 봄」의 시작으로, 각국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이슬람 과격파가 유입되었다.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던「이슬람 국가」(IS)는 2014년, 국가 수립을 선언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배타적 사상을 선전, 전투원 등을 권유하고 있다.

아프칸에 인접한 파키스탄은 소련의 아프칸 침공 시,「성전(聖戰)」의 전선기지로 자국을 제공, 의용병의 훈련 장소가 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군이 철퇴한 뒤에도 많은 무장 세력이 남아 있어 과격파가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이후, 테러가 자주 발생되었으나, 2014년에 샤리프 정권이 무장 세력의 척결을 감행, 과격파 세력은 수그러지고 있는 추세이다.

 

▶ 주요 이슬람 과격파와 활동지역

이슬람 국가

시리아, 이라크

알카이다

남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탈레반 운동

파키스탄

보코 하람

나이지리아

히즈볼라

레바논


 -- (5)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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