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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양자컴퓨터 1호기가 직면한 위기, “회로를 만들 수 없었다” -- 위기에서 구한 것은 문외한
  • 카테고리미래기술,전망/첨단산업
  • 기사일자 2026.01.15
  • 신문사 Nikkei X-TECH
  • 게재면 online
  • 작성자hjtic
  • 날짜2026-03-12 10:42:17
  • 조회수93

국산 양자컴퓨터 1호기가 직면한 위기, “회로를 만들 수 없었다”
위기에서 구한 것은 문외한
-- 순수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 이야기 (2)

현재 일본의 양자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경쟁력을 자랑한다. 2025년 7월에 공개된 주요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모두 국산으로 구성한 ‘순수 국산 양자컴퓨터’는 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순수 국산 양자컴퓨터의 탄생에는 그 전신이 되는 개발 프로젝트가 있었다. 2023년 3월에 공개된 국산 제1호기이다. 일부에 수입 부품 등이 사용되었지만, 일본 최초의 국산 양자컴퓨터이다. 그 개발을 이끈 사람이 현재 이화학연구소 양자컴퓨터연구센터의 나카무라(中村) 센터장이다. 개발 초기인 2019년 당시를 회상하며 나카무라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라고 말한다. 특히 양자 칩 개발은 전례가 없어 다양한 기술적 과제에 직면했었다고 한다.

“이 양자 칩 회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2018년,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문부과학성이 주도한 ‘Q-LEAP’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양자 기술이 향후 산업 및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가 높았지만, 2010년대 중반, 일본에서는 정부 주도의 개발 프로젝트가 별로 없었다. 서방 국가들과 중국이 연구개발을 강화하는 가운데, 일본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작한 것이 Q-LAEP였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에 있던 나카무라(당시에는 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이자, 이화학연구소 창발물성과학연구센터 팀 리더)는 양자컴퓨터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초전도 양자 칩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양자 칩은 복잡한 초전도 회로를 만들어 수십 개의 큐비트를 조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시 나카무라 연구팀이 설계한 양자 칩은 인접한 평면 위의 큐비트들이 서로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2차원 집적회로 위에 큐비트를 가진 기본 유닛을 평면상에 나열함으로써, 기본 설계를 바꾸지 않고도 큐비트를 스케일러블하게 늘릴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이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칩을 수납해 연결하는 새로운 배선 패키지 개발이 필수로, 나카무라 연구팀은 큐비트의 제어 및 판독에 사용되는 배선을 칩에 수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설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문제는 ‘이러한 칩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였다. 일반 반도체와는 재료와 설계가 크게 달라 독자적인 제조 방식을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 기판에 연결용 구멍(실리콘 비아)을 처음에 여러 개 뚫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것이 이후의 회로 형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실리콘 비아가 있으면 회로 패턴을 전사하는 감광제(포토레지스트)를 웨이퍼 표면에 균일하게 도포하기가 어려워져, 통상적인 반도체 제조와는 크게 다른 방식이 된다.

“역시 안 되겠네요.”
“그렇다면 다음엔 여기를 조금 바꿔서 해보자.”

나카무라는 이화학연구소의 클린룸에 소속된 기술 스태프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최적의 제조 조건을 찾는 데 매진했다.

-- 문외한 여성 스태프가 만든 돌파구 --
결국 포토레지스트의 도포 방법을 고안해서 최적의 조건을 찾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그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한 여성 기술 스태프였다.

“이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그녀는 이화학연구소에 소속된 직원으로, 반도체 전공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외한이었기에 오히려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나카무라 연구팀은 반신반의하며 여성 스태프의 제안을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이전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오, 괜찮은데,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를 회상하며 나카무라는 “그때 정말 그 분께 큰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연구팀에는 최대 10개국 이상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스태프가 소속되어 있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처럼 우수한 다수의 스태프들과 함께 한 것도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

-- 파트너사의 높은 기술력으로 완성 --
양자 칩 개발에 실마리가 잡히자, 그 다음 과제는 배선 패키지 개발이었다. 양자컴퓨터는 칩과 배선 패키지의 주변을 10밀리켈빈(mK, 약 -273℃)까지 냉각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반 반도체와는 다른 특수 부품이 필요하다.

나카무라 센터장은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제조사를 웹사이트에서 찾아 한 곳씩 전화를 걸어 교섭했다.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뛰어난 기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프로브(Probe) 제조업체인 세이켄(精硏, 도쿄)도 그 중 한 곳이다. 칩에 전극을 밀착시켜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컨택트 프로브를 개발하기 위해 나카무라는 미세한 핀이 다수 나열된 패키지의 사양서를 보여주며 세이켄에 제작을 타진했다.

“이런 것을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꽤 어려워 보이네요.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으니 해봅시다!”

처음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아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의하면서 계속해서 설계상의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을 거듭해 나가자 점차 완성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아직도 이렇게 뛰어난 기술이 존재하는구나.”

이화학연구소의 어려운 요구에 응답해 주는 세이켄의 저력을 직접 목격한 나카무라는 감동했다.

한편, 세이켄의 입장에서도 이 도전은 큰 의미가 있었다. 반도체 업계에서 실적을 가진 세이켄이었지만, 양자컴퓨터 관련 기술이나 노하우는 없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예를 들어, 양자 상태의 조작에는 마이크로파를 사용하지만, 이것은 반도체의 전기 신호와는 달리 반사를 억제하면서 정확하게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특수한 회로 설계가 필요했다. 이화학연구소의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경쟁사가 보유하지 않은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파트너사와 협력하며 한 걸음씩 개발을 추진해 온 연구팀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년 정도가 지난 2020년경, 비로소 양자컴퓨터 개발의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6큐비트의 시제품을 제작해 검증을 진행했으며, 실현 가능성이 확인된 시점에서 64큐비트로의 확장을 결정했다.

-- 반도체 칩의 기술 진화도 순풍으로 작용 --
제어 장치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오사카대학 양자정보·양자생명연구센터(QIQB)와 후지쓰(富士通)가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도 이 시기이다. 양자 칩만으로 양자컴퓨터는 가동되지 않는다. 제어 장치나 냉동기 등 전용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필수이다. 하지만, 나카무라의 전문 분야는 양자 칩 및 그 주변 장치로, 제어 장치와 소프트웨어는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일본 양자 기술의 운명을 좌우할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해보지 않겠습니까?”

나카무라 연구팀 멤버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연락해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했다. 이번 연재 1회에서 소개한 네고로(根來) 씨 등 QIQB 팀도 이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반도체의 진화도 개발을 뒷받침했다. 반도체 기술의 진화 속도는 빨라서 5년만 지나면 이전에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졌다.

“최첨단 기술을 얼마나 빨리 설계에 반영하느냐가 승부의 갈림길이었다.”

프로젝트 진행과 병행해 제어 장치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의 성능도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나카무라는 최첨단 기술 정보를 주시하며,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은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렇게 해서 점차적으로 큐비트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카무라 연구팀과 QIQB 팀의 필사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23년 3월에 국산 양자컴퓨터 1호기 공개와 클라우드 서비스 개시에 이르게 되었다. 1호기 공개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성능을 가진 실제 양자컴퓨터라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 힘들었지만 늦지 않게 마무리 되었다.”
“어깨의 짐이 내려간 것 같아요.”


나카무라뿐만 아니라 공개 행사에 모인 많은 파트너들이 안도감에 휩싸였다. 그 중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QIQB 멤버들도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소프트웨어 개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3회에 계속>


-- 최초의 큐비트, 누구도 양자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
나카무라는 1999년에 세계 최초로 고체 소자로 만든 초전도 큐비트를 개발한 실적이 가지고 있다. 당시, NEC 기초연구소 연구원이던 나카무라는 동료였던 차이(蔡)와 함께 연구를 추진하던 중 전자 회로상에서 양자의 중첩 상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디바이스상에서 양자 상태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증한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쾌거였지만, 연구 초기 목적은 전자 1개로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궁극의 저전력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에는 양자컴퓨터라는 용어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대였다. 나카무라도 “논문을 발표했을 때에는 바로 양자컴퓨터에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논문이 발표되자 전 세계 연구자들이 “양자 계산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나카무라의 연구에 주목했고, 단번에 각광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세계적으로 양자컴퓨터 연구가 가속화되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는 아직 일본의 반도체 산업에 활력이 있던 시기로, 나카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설비를 보유한 NEC에 매력을 느껴 지원. 1992년부터 2012년까지 NEC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연구에 매진했다. 그 후, 연구 영역을 넓히기 위해 도쿄대학과 이화학연구소로 소속을 옮기며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연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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